인형의 집

Posted at 2007/02/28 02:13 // in music // by Baezzie
1.

김동률의 목소리 때문일까 원티드의 목소리 때문일까

알 수 없이 괜히 가슴이 찡한다,

처음 듣는 것도 아닌 유행가에.


1.

열심히 논 덕분에 다음주 월화수 요일엔

중간고사 네개에 프레젠테이션도 있다!


1.

HENRIK IBSEN 의

A DOLL'S HOUSE 를 읽어보셨나.

내가 유럽여행을 열 네세살에 갔을때 엄마가 사진찍을려구

버킹검 궁전 앞, 빅벤, 파리의 노천까페 앞 등에서 나를 카메라 앞에 세우기만 하면

나는 불퉁! 하고 인상을 쓰고 볼에 바람 넣고 매우 뾰쭝한 표정으로 굳어서서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가 건질 사진이 없다고 한숨을 푹푹 쉬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나마 지금도 여전한 '썩쏘'하나 건저서 그것 하나 완전 크게 확대해서

반포에 살때 거실에 걸려있었던거 같은데.

조금 머리가 큰 후에는 아 내가 왜그랬나 잘 기억도 안나고 그냥 사춘기여서 그랬나보다 했었다.

그러나.

인형의 집의 노라가 침묵으로 굳어지며 내 가슴을 차갑도록 두근거리게 할때,

인형으로써의 자아로 살때 자신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지, 그  바닥 끝까지 무섭게 내리치는 참담함을 자기 몸으로 느꼈을때.

그래서 한 순간 깨달음으로

더 이상 Mr. torvald 의 종달새가 아닌, 예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인형이 아닌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닌, 아버지의 예쁜 딸이 아닌

- 비록 늦었지만, Nora 자기 자신을 스스로를 찾겠다고

무섭도록 냉정하고 분명하게 집을 걸어나가는걸 까만 글씨 속에서 봤을때.


어쩌면 열세살의 나 속에서 나 자신도 잘 몰랐지만 무언가가 있었나보다- 했다.

'인상쓰는 반항'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 ^^; 그저 '나'이고 싶다는 욕망.




사람에게는 당연히 한가지 이상의 역할이 있다.

물론 내가 지금 '나' 스스로의 역할을 제외한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인형이니

그만두겠다! 이렇게 또 어이없는 소리를 하려는건 아니다.

나는 워낙에도 '나'가 강한 사람이라 노라를 보기 전에도

주변사람들에게 열심히 모르는 척 상처주며 '나'이기를 외쳤던 본좌다.


노라가 자신을 찾아 나간것 까지는 찌릿했고 뭉클했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이 궁금하다.


자아가 자신 속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물론 나는 안보이나 존재하는 편이 더 쿨하다고 생각한다.ㅋ)

결국에는 혼자 살 수 없어 타인을 찾는게 항상 귀결이 되는것 같은데.

마지막 그 순간에 해피 엔딩으로 끝내줄 선택은 과연 어느건가 싶어서.


어피차 다 그게 그건거 싶기도 하고


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보는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끊임없이 껍질을 깨고. 또 내 손으로 하늘을 만들었다가,

다시 또 그 하늘을 깨고. 다시 손을 허공에 내 젛었다가. 또 다시.... 반복하는 것일 테지만,



뭐 그러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행복하게 낄낄대는게- 결국은 저 높은 창공이 아닌

내가 묻힐 지금 발 밑에 원점이. 저  깊 숙히, 차가워 보이지만 따뜻할 꺼라 믿는 곳이.

곧 내가 시작 했던 곳이 끝날 곳이고 또 시작할 곳이라는.


음.

그냥 한마디로 열심히 살겠다는 또 한번의,

알싸한 새벽 속 레파토리다.


단 문을 열고 나간 노라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는 좀 문을 열고 들어와 주변 사람을 따뜻하게 사랑해야겠다는 방향의 느낌으로.

2007/02/28 02:13 2007/02/28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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