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해당되는 글 1

  1. 바첼레트 칠레대통령 인터뷰 기사 2009/11/27

바첼레트 칠레대통령 인터뷰 기사

Posted at 2009/11/27 14:00 // in news scrappy // by Baezzie
칠레대통령 "지지율 80% 비결요? 포퓰리즘은 절대 아니죠"
구리판돈 모아서 국부펀드 조성해 글로벌위기 탈출
바첼레트 칠레대통령 매경인터뷰
■ 대담=장용성 주필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오른쪽)이 1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장용성 매일경제 주필과 대담하고 있다. <박상선 기자>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행복한 대통령이 성큼 다가왔다. 국정 지지율 80%를 구가하고 있는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이다. 2002년 남미 첫 여성 국방장관에 이어 2006년 칠레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쓴 바첼레트 대통령은 친근하고 소탈했다. 대통령은 12일 중국 상하이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30여 분을 할애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단독으로 만났다. 이번 2박3일 일정의 짧은 국빈 방문 동안 국내 언론과 마주앉은 첫 번째이자 마지막 인터뷰였다.

-80% 지지율에 놀랐다. 비결은.

▶처음부터 국민을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해 노력했다. 물론 처음에는 새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이해를 잘 못했다. 여성이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에 대해, 또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납득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 결정을 내리자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의사결정들이 결과적으로 이번 위기에 큰 빛을 발했다. 나는 인기에 연연해 정책을 내놓는 포퓰리스트(populist)가 아니다.

-구리 판 돈으로 국부펀드를 만들 생각은 어떻게 했나.

▶우리가 처음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노르웨이 아이디어였다. 산유국인 노르웨이는 석유 판 돈을 쓰지 않고 국부펀드를 만들었다. 칠레 역시 구리값이 오를 때마다 국부펀드에 돈을 넣어뒀다. 우리는 2015년이나 2020년 국민들의 수명이 늘어나 연금 적자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위기 때 돈을 어떻게 풀었나.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을 위해 금융사 예금을 보증하는 데 썼다. 특별세도 없앴다. 위기를 비교적 잘 버티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쉽게 파산할 수 있다. 칠레 경제의 70%는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또 고용 창출을 위해 많은 돈을 공공 부문과 공공 주택에 썼다. 고용을 유지하고 창출하기 위해 재계와 고용촉진협약도 맺었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혜택도 확대했다.

-기존 보수적인 사회를 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국방장관 재임 시 최상의 국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신경 썼다. 국방은 칠레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다. 또 둘로 쪼개진 사회를 건설적으로 화합하게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과거 적이었던 상대도 사회ㆍ정치적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포용했다. 국민 대다수는 경제 개발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있어 그것이 통합의 밑바탕이었다. 국민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은 내가 다른 이슈보다 국민 삶의 질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칠레 측은 더 많은 농산물 품목 개방을 원하고 있는 대신에 한국 기업들은 칠레 가전시장 개방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나.

▶11일 한국 재계 모임과의 조찬과 오찬에서 제기됐던 이슈다.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도하라운드 협상 타결이 빨리 될 줄 알았다. 도하라운드가 끝나면 한ㆍ칠레 FTA는 그 부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측은 앞으로도 정치와 경제ㆍ문화 협력을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슈에 대해 양국은 대화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칠레는 공항 등 인프라스트럭처가 잘 구성돼 있다. 남미 진출 교두보로 칠레를 활용할 수 있다.

-대선이 한 달 남았다. 대통령의 인기가 집권 중도좌파(콘세르타시온) 후보의 인기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 같다. 선거를 어떻게 예상하나.

▶기계적으로 한 사람의 인기를 다른 사람으로 옮길 수는 없다. 전임 대통령인 리카르도 라고스의 퇴임 당시 지지율은 62%였다. 1차 대선에서 내가 얻은 표는 45%에 불과했고, 결선투표에 가서는 54%였다. 라고스 대통령의 지지율보다 낮았다. 이번 선거 역시 결선투표까지 갈 것으로 예상되며 그때도 경쟁적일 것으로 예상한다. 정책의 지속성 측면에서 내가 속한 후보가 이기길 희망한다.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노벨상?(웃음) 기대하지 않는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또 내년 10월 12~14일 열리는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 행사에 중남미를 대표하는 글로벌 리더로서 기꺼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바첼레트, 매경에 친필 서한

이번 한국 방문이 너무 짧아 아쉽지만 방문 성과에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은 한 국가가 미개발과 빈곤 상태에서 민주적인 틀을 바탕으로 노력과 근면성, 명확한 방향을 갖고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는지를 내 모국과 대다수 많은 국가에 잘 보여주는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내게 한국 국민들은 매우 정답고 머무는 동안 모국처럼 편안했다.

한국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오피니언을 창출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 매일경제신문에 축하한다.

■ 보수적인 가톨릭국가서 싱글맘으로 대통령 올라

바첼레트 대통령(58)은 남성 중심의 보수적 가톨릭 국가에서 `싱글맘`으로 2006년 첫 여성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피노체트 군사 독재(1974~1990) 시절 민주화 투사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늘 봉사하는 삶을 산 게 대통령에 오르게 했다. 피노체트 쿠데타 직전 공군 장성이던 아버지는 고문을 당하고 73년 감옥에서 숨졌다. 어머니와 함께 투옥당해 갖은 고문을 받고 석방된 뒤 해외로 망명했다. 첫 망명지는 호주였고 그 다음 동독으로 간 뒤 79년 귀국했다.

동독에서 의학을 전공해 귀국 후 소아과 전문의로 일했다. 97년 미국 워싱턴DC 미주국방대학에서 군사학을 공부해 2002년 첫 남미 여성 국방장관이 되는 데 기초를 닦았다. 2000년에는 보건부 장관으로 발탁돼 진료 예약 무료 전화와 만 1세 미만 영아와 65세 이상 노인에게 24시간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국방장관 재임 시절 군 무기 현대화를 꾀했으며 군 조사관과 군 경비대에 여성 근무를 허용했다. 2006년 3월 취임해 여성과 남성 각료를 절반씩 구성하는 파격을 실행했다.

또 원자재 호황 때 구리를 수출해 재원 300억달러를 모았으며 이 가운데 200억달러를 국부펀드로 운용했다. 이번 위기 때 국부를 풀어 경기부양책에 활용했다.

[정리 = 이향휘 기자]
2009/11/27 14:00 2009/11/27 14:00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