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성당에 오랜만에 일찍 도착했다.
간만에 보는 미사에 설레는 마음으로 성당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날 따라 분위기가 고즈넉했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정전 덕분이었다.
정전된 분위기는 생각보다 분위기가 더욱 좋았다.
원래 늘 그랬던 제대위에 있는 촛불이 더욱 돋보이고 진지해보였다.
미사가 시작해도 정전은 계속 되었고
내 눈은 점점 어둠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안보이던 글씨들이 하나둘 조금 씩 눈에 들어온다.
뭔가 알 수 없는 느낌이... 어둠으로의 진화 ?
기도는 왠지 더 차분한 마음에 잘 되었고
이대로 쭉 가면 좋겠다......하는 순간
팟
전기는 무드없이 다시 약 30분 만에 들어와버렸고
반가워야 할 빛은 그냥 생뚱깽뚱 맞은 불청객같았다.
가끔은 전기 불 없이 어두워지면 어두워지는 대로
가족들과 엉켜서 서로 깨물고 장난하고
조용조용 이야기하고 킥킥대야만 하는
그런 생활권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 남편 되실 분은 일년에 몇일쯤 전기가 밤에 끊기는
필리핀의 한 섬에 가서 살 준비가 되어있으시길 바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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