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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씨가 다시.. 2007/04/17

날씨가 다시..

Posted at 2007/04/17 01:16 // in my arts // by Baezzie



손에 물이 잡힐 것만 같이 습한 '홍콩의 여름' 날씨가 다시 시작되려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정신 없이 지나느라 봄을 못보고

여기서는 시간은 많은데 봄이 흔적도 없이 은근슬쩍 지나가버리니

제대로 봄을 보는 시간이 최근의 기억으로 남아있는게 별로 없다.


봄도 참 설레는 계절이지만

나는 어쩐지 마구 싱그러움을 터트리려고 녹빛 생명을 함뿍 머금은

초 여름이야 말로 정말 설렐 수 밖에 없는 계절인듯 하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하얀 눈이 내리고 하얀 입김이 호- 서리는 겨울의 중간에 태어났다.


엄마 젖에만 얼굴을 파고 있는 시간이 지나

눈을 조금씩 떠가고 주위의 것들이 보임에 따라

나를 둘러싸고 자꾸 자꾸 웃으며 이 이상한 표정 만드는 사람들이 누군가.

내가 빛을 보고 나온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조금씩 사람됨을 갖추어가며
 

내 인생의 시작을

한 해의 시작과 함께, 한 계절의 생명 주기와 함께 시작해



20세기 말에 태어난 한 아이니까 물론 병원에서 태어났겠지만. :)

병원에서 쑥 빠진 다음에
 
(솔직히 왜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곳이 아플때 가는 곳과 같아야하는 것이 조금 불만이다ㅋ)

내가 아직 생명체라고 하기엔 뭣한 꼬물거리는 존재일때 나는 바로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앵두나무가 있던 할머니댁으로 갔다.


조금 커서 학교를 다닐무렵쯤에

아침 일찍 일어난 할아버지랑 같이 따서 입안에 털어 넣으면

새콤 달콤했던 작은 앵두들, 그 앵두 나무가 있던 내 기억 속 첫 집.


그 첫 집에서

태어난지 몇일 안된 나를 할머니가 매일같이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씻겨주고 이 닦아주고-



지금도 그리라면 단숨에 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할머니네 집 일층의 그 나무 마루바닥과 벽, 옆으로 미는 유리나무문, 금붕어 -

왼쪽으로 있던 이층으로 가는 계단, 그 계단이 만든 작은 창고 하나.


신발을 벗고 올라서

빤닥빤닥한 나무 빛깔의 크지 않은 거실을 지나면

참 넓은 방의 한쪽 면을 꽉 채우며 천장까지 닿았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개장.


그 넓고 평화로운 방에서

나는 할머니 팔베게도 하고 낮잠도 쿨쿨 자고

할아버지 옆에서 티비도 보고

가끔 티비 밑의 할아버지 장에서 나오던 맛있는것들.


저녁때면 그 네모낳고 큰 방처럼

커다란 상에 임금님의 수라상처럼 수십가지의 반찬이 있었던 저녁 상-

나는 아직도 갈비찜- 하면 외할머니댁에서 먹는 그 갈비찜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진한 앙념 색에 슬쩍 달콤한 냄새가 뜨거운 김을 따라 솔솔 올라오며

항상 빠지지 않고 잣이 고기위에 올려져있었던 그 갈비찜.

지금도 명절이면, 한 차례 다 먹고도

갈비찜과 전이 있는 할머니네 집 저녁이라면 배가 터져라 먹고 또 먹는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세상이다.


내가 언제 어디서나 '삼촌!'만 외치면 바로 달려와 나를 번쩍 들어올려

눈에 넣어줄것만 같았던 우리 삼촌.

항상 간지럼 태우고 나를 보기만 하면 2초가 멀다하고 예쁘다는 말을 웃음과 함께 반복하고 반복해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쩌면 내 무의식에 쾅쾅 새겨준 나의 삼촌.

지금의 숙모인 그 당시 삼촌의 여자친구를 처음 본것도

어느 한 무더운 날의 이층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다.

긴 파마머리였던 숙모.

웃기게도 사실 그때 봤던 숙모 얼굴은 잘 기억이 안나고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아이- 배 아파. 화장실 가아지' 했던 기억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유치원에 다녔던것 같은데.



미국에 한 2년 반 정도 엄마 아빠 동생과 살아 온 후에

처음  들었던 소식이 삼촌과 숙모의 아가가 태어났다는거 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 추억하는 이 앵두나무가 있던 나의 첫 집은

저- 멀리 산꼭대기에 있던 집이라

아빠 차 없이 엄마 손잡고 올라갈때면

아주아주아주아주 높은 꼭대기에 있어서

, 물론 그때는 꼬맹이니까 다리가 짧아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한 반쯤 올라가면 있던 슈퍼에서 잠시 쉬어갈겸

아가 였던 승재가 먹을 수 있는 과자도 살겸

엄마에게 동전을 받아서 항상 홈런볼 아니면 계란과자를 샀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 내 어렸을적 기억들.

사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치 박완서의 소설이라도 읽는 양

이때의 기억들이 확확 지나가서 공책에는 만년필로 한바닥 써놓았다.

박완서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쓸 수 있을것 같아.


2007/04/17 01:16 2007/04/1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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